‘만리장성’에 부딪친 브랜드 행동주의

브랜드 행동주의가 맞이한 도전

브랜드 행동주의(brand activism)는 기업이나 브랜드가 정치사회적인 쟁점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히고 행동을 취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하던 글로벌 기업들이 최근 중국에서 거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생산된 면화 사용 중단을 선언한 글로벌 패션기업들을 대상으로 중국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인 것입니다.  불매운동의 대상은 H&M을 비롯해 세계 면화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목표로한 비영리 단체에 가입한 기업들입니다. 물론 이들이 브랜드 행동주의를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사업범위를 넘어서 정치사회적인 쟁점의 해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브랜드 행동주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여기서는 글로벌 패션기업에 대한 중국의 불매운동 사례를 통해 최근 부상한 브랜드 행동주의가 해외 시장에서 맞게 되는 문제점과 대응방향,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다뤄보겠습니다.

출처: Better Cotton Initiative

중국 소비자 불매운동의 발단 및 전개

이번 중국시장의 불매운동은 지난 3월 22일 미국과 유럽(EU)이 중국에 대한 제재조치를 발표한 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자국 정부의 제재조치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이 애먼 피해를 본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9월 스웨덴 패스트패션 업체 H&M은 중국 신장 지역의 인권탄압 의혹으로 인해 이 지역에서 생산된 면화 사용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H&M의 성명이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번 불매운동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가입한 국제 면화산업 감시단체 <더 나은 면화를 위한 구상(Better Cotton Initiative)>에서는 이미  1년 전인 2020년 3월  ‘신장면화’에 대한 인증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서방국가들의 제재조치 발표 후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이 웨이보를 통해 관련 기업들을 비판하면서 최근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이른바 ‘소비 애국주의’와 함께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된 것입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소비자 불매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한 뒤로는 관련 기업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정보통신업체들은 앱스토어에서 H&M 앱 다운로드를 막았습니다. 또한 온라인 지도에서 매장 위치정보도 차단되었습니다. H&M 광고모델이었던 연예인들도 갑자기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불매운동은 다른 BCI 가입 기업들인 나이키, 버버리 등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시장의 ‘소비 애국주의’와 불매운동은 정치적인 쟁점과 관련해서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9년 홍콩시위와 관련해서는 나이키와  NBA 등을 겨냥한 불매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문화산업 분야에서는 국가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표현이나 콘텐츠에 대해서 크고 작은 불매운동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규모 불매 운동 뒤에는 국가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정부의 묵인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대응 방향

지역 시장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글로벌 기업들의 사회적 참여는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지역 시장의 반발에 대한 대응방식은 해당 기업이나 브랜드의 행동주의가 진정한 가치에 기반한 것인지를 가려주는 시금석이 될 전망입니다. 세계시장에서 브랜드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은 지역 시장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릎쓰고 회사의 가치와 목적을 고수하는 쪽과 현실적인 시장의 압력과 타협하는 쪽으로 나뉘게 될 것 입니다. 전자로는 벤앤제리스나 파타고니아 등 이른바 행동주의 기업(activist companies)들이 계속 대의를 지켜갈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가 이윤창출 보다 앞서거나 적어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다수에 해당하는 후자는 회사의 본질적인 가치와 사회적 이슈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주로 마케팅 차원의 접근입니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이러한 기업들은 BCI 탈퇴 후 기존 정책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모 패션기업은 중국 지사를 통해 신장 지역 면화를  계속 사용하고 있으며,  BCI를 곧 탈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의 유니클로 역시 신장면화 사용중단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이러한 기업들은 회사 방침을 바꾼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소비자 중심주의’나 ‘품질’을 언급할 뿐. 이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업을 경영하는 모습과는 다른 과거의 방식입니다.  

세계시장에서의 브랜드 행동주의

물론 브랜드 행동주의를 따르는 기업들이 모두 행동주의 기업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 일시적인 선행과 달리 브랜드의 행동을 촉구하는 이해관계자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각 브랜드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되는 일관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해외시장은 브랜드의 행동주의 성향을 일깨워준 자국 시장 환경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역 시장에서는 논란이 있는 정치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기업을 지지해 주는 충성스런 소비자나 파트너 시민단체들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기업의 소통노력은 현지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국가간 이해관계를 비롯해,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종교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기업의 의도는 다른 이슈에 묻혀버리거나 왜곡되기 쉽습니다. 이러한 경우 글로벌 기업들은 흔히 지역 시장의 ‘외국계’ 기업으로서 ‘소비 애국주의’의 손쉬운 목표물로 프레이밍됩니다. 그 결과 글로벌 패션기업들의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중국 소비자들에게 ‘외국기업의 국가이미지 훼손’ 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현지 시장에서 실행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브랜드 행동주의의 전망

이번 중국시장 불매운동의 경과에 따라 브랜드 행동주의에 대한 기업들의 접근방식, 특히 해외시장에서의 판단은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일부 행동주의 기업들의 실천은 계속 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케팅 트렌드로서의 버즈(marketing buzzs)는 자국 시장에서도 한풀 꺾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국내 시장에서는 계속 행동주의적 경향을 띄지만 해외 시장에서는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즉,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강한 지역의 경우 자사가 선택한 쟁점과 다르게 프레이밍이 되거나 의도하지 않게 관여된 경우 다수의 브랜드들은 정면 대응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는 자국 내에서 인종차별 행위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홍콩 시위와 관련된 쟁점에 대해서는 침묵한 바 있습니다(관련기사 참조).  그럼에도 주어진 역학관계 속에서 각 브랜드는 가치와 원칙을 중심으로 헤쳐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단순히 힘의 논리에 따라 본능적으로만 움직인다면 해외 시장은 물론 자국의 충성적인 소비자까지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맺는 글

최근 글로벌 패션기업들에 대한 중국의 불매운동은 국가간 분쟁의 결과가 아닌, 기업들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따른 반작용으로 봐야 할 것 입니다. 물론 직접적인 불매운동은 각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제재조치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국가간 분쟁의 일방적 피해자로만 보는 것은 최근 기업이 사회에서 수행하고 있는 적극적인 역할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실 세계의 지역 시장은 기업들의 자발적인 정치사회적 참여를 요구하고 지원하는 자국 시장 환경과는 크게 다릅니다.  ‘신장 면화’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글로벌 기업들이 자신의 사업분야에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려는 노력도, 심지어 기업 공동의 행동조차, 해당 국가의 ‘벽’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속가능성을 개선하기는 커녕, 국가적 이해관계나 종교문화적 차이에 따라 그 의도조차 지역의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브랜드 행동주의를 계속 자국 시장에만 한정시킬 수도 없을 것입니다. 다양한 국제 NGO와 세계화된 시민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고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보다 면밀한 포지셔닝 및 지역 가치와의 조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는 한계가 있겠만,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차원의 국제적 연대를 통해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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