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에 부딪친 브랜드 행동주의

브랜드 행동주의가 맞이한 도전

브랜드 행동주의(brand activism)는 기업이나 브랜드가 정치사회적인 쟁점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히고 행동을 취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하던 글로벌 기업들이 최근 중국에서 거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생산된 면화 사용 중단을 선언한 글로벌 패션기업들을 대상으로 중국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인 것입니다.  불매운동의 대상은 H&M을 비롯해 세계 면화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목표로한 비영리 단체에 가입한 기업들입니다. 물론 이들이 브랜드 행동주의를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사업범위를 넘어서 정치사회적인 쟁점의 해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브랜드 행동주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여기서는 글로벌 패션기업에 대한 중국의 불매운동 사례를 통해 최근 부상한 브랜드 행동주의가 해외 시장에서 맞게 되는 문제점과 대응방향,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다뤄보겠습니다.

출처: Better Cotton Initiative

중국 소비자 불매운동의 발단 및 전개

이번 중국시장의 불매운동은 지난 3월 22일 미국과 유럽(EU)이 중국에 대한 제재조치를 발표한 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자국 정부의 제재조치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이 애먼 피해를 본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9월 스웨덴 패스트패션 업체 H&M은 중국 신장 지역의 인권탄압 의혹으로 인해 이 지역에서 생산된 면화 사용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H&M의 성명이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번 불매운동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가입한 국제 면화산업 감시단체 <더 나은 면화를 위한 구상(Better Cotton Initiative)>에서는 이미  1년 전인 2020년 3월  ‘신장면화’에 대한 인증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서방국가들의 제재조치 발표 후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이 웨이보를 통해 관련 기업들을 비판하면서 최근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이른바 ‘소비 애국주의’와 함께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된 것입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소비자 불매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한 뒤로는 관련 기업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정보통신업체들은 앱스토어에서 H&M 앱 다운로드를 막았습니다. 또한 온라인 지도에서 매장 위치정보도 차단되었습니다. H&M 광고모델이었던 연예인들도 갑자기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불매운동은 다른 BCI 가입 기업들인 나이키, 버버리 등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시장의 ‘소비 애국주의’와 불매운동은 정치적인 쟁점과 관련해서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9년 홍콩시위와 관련해서는 나이키와  NBA 등을 겨냥한 불매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문화산업 분야에서는 국가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표현이나 콘텐츠에 대해서 크고 작은 불매운동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규모 불매 운동 뒤에는 국가적 이해관계를 고려한 정부의 묵인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대응 방향

지역 시장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도 글로벌 기업들의 사회적 참여는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지역 시장의 반발에 대한 대응방식은 해당 기업이나 브랜드의 행동주의가 진정한 가치에 기반한 것인지를 가려주는 시금석이 될 전망입니다. 세계시장에서 브랜드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은 지역 시장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릎쓰고 회사의 가치와 목적을 고수하는 쪽과 현실적인 시장의 압력과 타협하는 쪽으로 나뉘게 될 것 입니다. 전자로는 벤앤제리스나 파타고니아 등 이른바 행동주의 기업(activist companies)들이 계속 대의를 지켜갈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가 이윤창출 보다 앞서거나 적어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다수에 해당하는 후자는 회사의 본질적인 가치와 사회적 이슈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주로 마케팅 차원의 접근입니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이러한 기업들은 BCI 탈퇴 후 기존 정책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모 패션기업은 중국 지사를 통해 신장 지역 면화를  계속 사용하고 있으며,  BCI를 곧 탈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의 유니클로 역시 신장면화 사용중단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이러한 기업들은 회사 방침을 바꾼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소비자 중심주의’나 ‘품질’을 언급할 뿐. 이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업을 경영하는 모습과는 다른 과거의 방식입니다.  

세계시장에서의 브랜드 행동주의

물론 브랜드 행동주의를 따르는 기업들이 모두 행동주의 기업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 일시적인 선행과 달리 브랜드의 행동을 촉구하는 이해관계자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각 브랜드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되는 일관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해외시장은 브랜드의 행동주의 성향을 일깨워준 자국 시장 환경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역 시장에서는 논란이 있는 정치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기업을 지지해 주는 충성스런 소비자나 파트너 시민단체들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기업의 소통노력은 현지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국가간 이해관계를 비롯해,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종교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기업의 의도는 다른 이슈에 묻혀버리거나 왜곡되기 쉽습니다. 이러한 경우 글로벌 기업들은 흔히 지역 시장의 ‘외국계’ 기업으로서 ‘소비 애국주의’의 손쉬운 목표물로 프레이밍됩니다. 그 결과 글로벌 패션기업들의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중국 소비자들에게 ‘외국기업의 국가이미지 훼손’ 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현지 시장에서 실행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브랜드 행동주의의 전망

이번 중국시장 불매운동의 경과에 따라 브랜드 행동주의에 대한 기업들의 접근방식, 특히 해외시장에서의 판단은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일부 행동주의 기업들의 실천은 계속 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케팅 트렌드로서의 버즈(marketing buzzs)는 자국 시장에서도 한풀 꺾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국내 시장에서는 계속 행동주의적 경향을 띄지만 해외 시장에서는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즉,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강한 지역의 경우 자사가 선택한 쟁점과 다르게 프레이밍이 되거나 의도하지 않게 관여된 경우 다수의 브랜드들은 정면 대응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는 자국 내에서 인종차별 행위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홍콩 시위와 관련된 쟁점에 대해서는 침묵한 바 있습니다(관련기사 참조).  그럼에도 주어진 역학관계 속에서 각 브랜드는 가치와 원칙을 중심으로 헤쳐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단순히 힘의 논리에 따라 본능적으로만 움직인다면 해외 시장은 물론 자국의 충성적인 소비자까지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맺는 글

최근 글로벌 패션기업들에 대한 중국의 불매운동은 국가간 분쟁의 결과가 아닌, 기업들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따른 반작용으로 봐야 할 것 입니다. 물론 직접적인 불매운동은 각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제재조치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국가간 분쟁의 일방적 피해자로만 보는 것은 최근 기업이 사회에서 수행하고 있는 적극적인 역할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실 세계의 지역 시장은 기업들의 자발적인 정치사회적 참여를 요구하고 지원하는 자국 시장 환경과는 크게 다릅니다.  ‘신장 면화’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글로벌 기업들이 자신의 사업분야에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려는 노력도, 심지어 기업 공동의 행동조차, 해당 국가의 ‘벽’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속가능성을 개선하기는 커녕, 국가적 이해관계나 종교문화적 차이에 따라 그 의도조차 지역의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브랜드 행동주의를 계속 자국 시장에만 한정시킬 수도 없을 것입니다. 다양한 국제 NGO와 세계화된 시민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고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보다 면밀한 포지셔닝 및 지역 가치와의 조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는 한계가 있겠만,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차원의 국제적 연대를 통해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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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M 시대의 브랜드관리: NFL 워싱턴 팀 이름 변경

최근 글로벌 PR기업인 에델만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브랜드와 인종 정의(racial justice)’에 관한 조사결과, 응답자의 약 60%는 인종차별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는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이러한 인종차별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많은 기업과 브랜드들의 입장표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중립지대’였던 스포츠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일반 기업들에 대한 브랜드 관리의 함의를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스포츠팀의 인디언 부족 상징활용 논란

지난 50여 년 동안 미국 원주민(American Indians)을 비하하는 팀이름을 쓰지 말도록 요구 받아온 미국 프로축구(NFL)팀 워싱턴 레드스킨스(Redskins; 이하 워싱턴 풋볼팀)가 최근 구단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193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창립된 이 팀은 워싱턴 D.C.로 연고지를 이전한 뒤에도 계속 같은 이름을 사용해 왔습니다. 한편 미국 원주민 단체에서는 1940년대부터 각급 학교 스포츠팀 및 프로구단들이 자신들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인 표현을 팀 이름이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해왔습니다. 이들은 1968년부터 공식적인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또한 1972년부터는 워싱턴 풋볼팀의 이름변경을 직접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한 때 약 2천 여개에 달했던 ‘인디언’과 관련된 이름이나 상징을 사용하던 각종 스포츠 팀의 약 절반 정도가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워싱턴 풋볼팀은 2013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 및 연방 의원들의 잇따른 팀 명칭 변경 건의에도 불구하고 팀 이름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종차별 철폐운동(“Black Lives Matter”)이 벌어진 지 약 2개월 만에 결국 워싱턴 풋볼팀은 팀이름 변경을 발표합니다. 해당 구단의 이름 변경 결정과 관련된 주요 기업들의 움직임은 아래와 같습니다.

(7/2)

  • 워싱턴 풋볼팀의 최대 후원기업인 페덱스의 ‘구단명 변경’ 요청
    • 비공개 서신 발송 및 요청사실의 대외적 공표
    • 경기장 이름 명명권(naming right) 계약철회 가능성 언급  
  • 나이키 온라인 스토어의 ‘레드스킨스’ 구단상품 퇴출

(7/3)

  • 워싱턴 풋볼팀의 구단명칭 관련 ‘철저한 검토’계획 발표      
  • 후원기업인 펩시와 뱅크오브 아메리카, 그리고 나이키, NFL 총재의 지지 표명       

(7/13)

  • 워싱턴 풋볼팀의 팀 명칭 변경 발표 

1999년 워싱턴 풋볼팀을 인수한 대니얼 스나이더 구단주는 팀의 오랜 역사와 전통, 영예와 자부심의 상징, 우호적인 여론조사 결과 등을 내세우며 팀 이름 변경을 거부해 왔습니다. 이렇듯 팀 이름 변경을 위한 각계의 노력에도 꿈쩍하지 않던 구단이 갑자기 입장을 바꿨습니다. 무엇이 달라졌기 때문일까요? 현재 사회적인 정당성이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사회적 ‘중립지대’의 소멸

그동안 많은 스포츠팀들은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일반 기업처럼 역사, 관행, 성역,  열성 소비자 또는 팬, 의도의 순수성 등을 들며 거부해 왔습니다. 하지만 조직이 외부의 논란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No Traffic Island" 표지판

역사적 사실 또는 관행의 폐기 

그동안 각 사회에서는 오래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현재의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을 자제해 온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플로이드 사건 이후 세계 각국에서 노예제에 앞장 섰던 인물들의 조형물이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브리스틀에서는 17세기 노예무역상이었던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이 끌어 내려졌습니다. 수백년 전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87년간 사용해 온 구단이름을 바꾸라는 요구는 지나치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업계나 마케팅 상의 ‘관행’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정치적 중립성’의 소멸

대표적인 정치적 중립 영역으로 알려진 스포츠 역시 더 이상 ‘성역’이 아닙니다. 올림픽 헌장을 근거로 ‘정치적 표현’을 엄격하게 금지해 온 IOC에서 조차 지난 6월 적절한 방식의 표현을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약 4년 전 콜린 캐퍼닉스의 ‘무릎꿇기’ 세리머니를 금지했던 NFL에서도 최근 잘못된 조치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또한 NFL 총재는 지난 달 워싱턴 풋볼팀의 구단주에게 구단이름 변경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안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주요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조직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기본적인 대응기조가 되고 있습니다.

팬 커뮤니티의 한계 

열성적인 팬들의 존재는 그동안 워싱턴 구단주가 팀 이름의 변경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스포츠 리그인 NFL의 명문구단 팬들의 존재 때문에 변화를 요구하는 미국 원주민들의 목소리는 사실상 묻혀버렸습니다. 그러나 BLM시대가 되자 열성팬들도 더 이상 자신들의 경험과 추억을 근거로 ‘팀 이름 변경’에 반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재 사회적인 정당성이 ‘인종차별 반대’ 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워싱턴 구단을 포함해 미국 원주민과 관련된 이름이나 상징을 지닌 스포츠 팀들 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징의 이해: 피해자 관점 

그동안 워싱턴 풋볼팀을 비롯한 많은 스포츠팀에서는 구단 이름, 로고, 캐릭터 등에서 미국 원주민들의 정체성을 차용해 왔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비하’가 아닌 ‘친밀감’ 또는 ‘경의’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미국 원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Redskins’은 미국 원주민 말살정책이 펼쳐지던 영국 식민지 시절 현상금을 받기 위한 증거물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부족 이름을 팀이름으로 사용하는 다른 스포츠팀 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 원주민들은 초기부터 워싱턴 풋볼팀을 타깃으로 설정했을 것입니다.

NCAI의 ‘마스코트를 바꿔라(Change the Mascot)’ 동영상

미국 원주민들의 ‘용맹함’을 기리거나, ‘친근한’ 마스코트로 활용하고 있더라도 당사자들이 불편해 한다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적지 않은 미국 원주민들이 자신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불러 일으키는 표현들을 불편해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르면 정확한 ‘어원’ 또는 객관적 ‘인식조사 결과’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에스키모’라는 표현의 어원이 무엇이든 간에 현지인들이 모욕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약 100년된 네슬레의 아이스크림 브랜드 ‘에스키모 파이’는 최근 알래스카 지역의 이누이트족 비하 논란 때문에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캐나다 풋볼팀 에드먼턴 에스키모스 역시 팀 이름을 바꾼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업 이해관계자: 기업 행동주의(Corporate activism)의 출현

워싱턴 풋볼팀의 전격적지만 ‘때늦은’ 명칭 변경에는 후원사 및 협력업체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가장 큰 규모의 후원사인 페덱스는 1999년 워싱턴 풋볼팀과 2억 5백만달러 규모의 경기장 이름 사용권 (stadium naming rights) 장기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페덱스는 팀이름이 바뀌지 않을 경우  2020년 시즌 이후 잔여 계약을 파기할 뜻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워싱턴풋볼팀은 잔여 기간 동안 약 4,500만 달러의 잔금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구단 상품 제조업체인 나이키는 물론 주요 유통업체들인 월마트, 타겟, 아마존마저 구단상품 판매를 배제하면서 압박행렬에 동참했습니다. 결국 사회전반의 인종차별이슈에 대한 감수성이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워싱턴 구단의 이름변경을 위해 노력해 온 전국 스포츠/미디어 인종차별철폐 연합(the National Coalition Against Racism in Sports and Media)의 관계자 역시 ‘돈의 결정적인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앞으로 시민단체들은 자신들의 타깃기업을 움직이기 위해 협력업체 등 관련기업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력행사를 늘려갈 것입니다. 또한 바디샵, 파타고니아 같은 대표적인 행동주의 기업뿐만 아니라 최근의 브랜드 행동주의(Brand Activism) 등을 통해서 기업의 행동주의 경향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브랜드PR에의 시사점

NFL 워싱턴 풋볼팀의 ‘때늦은’ 이름 변경은 해당 구단의 브랜드 관리차원의 문제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구단과 기업들이 인종차별 논란이 있는 브랜드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사례는 앞으로 브랜드 관리가 단순한 마케팅 관점을 넘어 정치사회적인 맥락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함을 잘 보여줍니다.  BLM 시대의 브랜드 PR이 고려해야 할 점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기업이 정치사회적인 주요 쟁점에 대해 입장 표명없이 침묵할 수 있는 안전한 중립지대 및 안전장치(?)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치적 중립성’, 역사 및 전통, 관행, 팬 커뮤니티 등 과거에는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방어하는데 활용할 수 있었던 근거들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주요 사안에 대해 각 기업은 명확한 입장정리가 필요합니다. 물론 일관성을 위해서는 기업의 창립이념이나 경영철학을 기반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치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적절한 행동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둘째, 시민단체의 전략적 타깃 설정 및 행동주의 기업의 증가에 따라 마케팅 및 브랜드 관리에서도 이해관계자 관계관리 관점의 채택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타깃 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기 위해 ‘약한 고리’ 기업들을 지렛대로 활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련기업들의 영향력 행사는 워싱턴풋볼팀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처럼 브랜드 행동주의(brand activism) 또는 기업 행동주의 등을 통해 더욱 증대될 것입니다.

끝으로, 기존 브랜드 자산의 소멸됨에 따라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가치에 기반해 새로운 정체성 및 사업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상적인 브랜드 관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브랜드의 핵심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제기는 필연적으로 기존 브랜드 자산과의 단절 또는 포기를 낳게 됩니다. 따라서 기존 브랜드 정체성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새로운 정치사회적 환경과의 적합성을 판단하고 필요할 경우 선제적으로 새로운 브랜드 가치 및 정체성을 수립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립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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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 브라이언트 추모물결로 본 PR커뮤니케이션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최근 헬기사고로 숨진 NBA 선수 출신 코비 브라이언트를 애도하는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LA, 뉴욕 등 미국은 물론 필리핀 등 세계 곳곳에서 팬들의 자발적인 추모메시지와 추모행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유명 운동 선수들도 경기 중 코비를 추모하는 세리머니를 펼치거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애도의 뜻을 밝혔습니다. 한편 조직 차원에서는 NBA 및 그의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기업과 단체에서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번 사고가 불러 일으킨 세계적인 차원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현상들을 PR관점에서 살펴 보겠습니다.  

LA 레이커스 구단과 NBA

일반적으로 PR은 조직 차원의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이자 관계관리 기능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고와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조직은 코비 브라이언트가 20년 간 선수생활을 했던 LA 레이커스 구단과 NBA 리그 입니다. 코비의 죽음이 알려진 뒤 LA 레이커스 구단은 경기장이 위치한 스테이플스센터 앞에 추모공간을 설치했습니다. 다만 추도문과 사진을 게시한 다른 구단들과는 달리 레이커스 구단은 사흘 동안 소셜미디어 계정 운영을 멈췄습니다 (루키 관련보도 참고). 이후 구단은 29일 밤(현지 시간)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고 피해자를 돕기위한 기금조성 소식을 알리며 다시 팬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NBA 사무국에서는 아담 실버 총재가 직접 추모 메시지를 발표하고, 레이커스 구단과 협의해 예정된 지역 라이벌 전을 전격적으로 연기했습니다. 한편 NBA 선수들은 경기 시작 첫 24초 동안 플레이를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 보냄으로써 코비 브라이언트의 등 번호 ’24’를 기억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프로농구리그(KBL)에서도 경기 시작 후 24초, 8초 동안 시간을 흘려 보내면서 애도를 표했습니다. 

유명인사들의 추모릴레이

또한 축구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네이마르, 테니스의 노박 조코비치, 골프의 타이거 우즈, 육상의 우사인 볼트 등 종목을 떠나서 많은 유명 선수들이 추모행렬에 동참했습니다. 친분관계를 떠나서 유명 스포츠 선수들은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뜻을 밝힐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포르투갈 프로축구 선수인 루이스 피구가 호날두의 애도문을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을 받게 된 것도 추모행위가 스포츠 스타선수들 가운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키트리 기사 참고). 나아가 현재 사회 명사들 사이에서도 코비 추모에 관한 일종의 ‘사회적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과 IOC 위원장의 추도 메시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인들의 집합행동

팬이든 유명인사든 추모의 뜻을 밝히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팬들은 개인적으로 온오프라인 추도행위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서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기존 NBA로고의 배경 이미지를 코비 브라이언트로 바꾸자는 청원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실현가능성을 떠나서, 개별 팬들이 코비 브라이언트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NBA라는 조직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하나의 공중(public)을 형성한 것입니다. 200만 명이 넘은 청원활동과 관련해 NBA의 답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비 농구 관련 기업 및 조직

한편, 농구와 무관한 기업이나 조직에서도 입장을 표명하거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LA시 청사 및 LA 국제공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필리핀의 쇼핑몰 등은 코비 브라이언트의 레이커스 구단 상징 색인 보라색과 노란색 조명을 밝혔습니다. 레이커스 팀과 같은 LA를 연고지로 하는 MLB 다저스 구단에서도 추모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NFL에서도 다가오는 슈퍼볼 경기 하프타임에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추모행사 이미지 참고링크).

대체로 보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에서는 지역의 대표적인 ‘영웅’을 잃은 지역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각종 스포츠 단체에서는 추모 메시지를 통해 코비의 ‘스포츠 정신’을 강조함으로써 공통분모를 찾고 있습니다.

부정적 기사 공유한 기자에 대한 제재

위의 조직들이 코비의 사망과 관련해 이해관계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고 한다면 일부 조직들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먼저, 코비의 사망소식이 전해지는 상황 속에서 코비의 과거 성폭행 추문과 관련된 이전 기사를 트윗한 기자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정직 처분을 내렸습니다 (중앙일보 관련보도 참고). 물론 코비의 성추문 관련 기사를 트윗한 기자에 대한 찬반입장은 팬들 사이에서도 갈리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처럼 그의 업적과 허물을 같이 다루는 주요 언론들도 있지만 정작 성난 팬들로 인해 논란의 중심이 된 워싱턴 포스트는 ‘다수’의 정서를 따르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코비의 장례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케팅 계획 변경

한편,  약 1주일 뒤인 54회 슈퍼볼 경기 중계에 내보낼 TV광고 캠페인을 준비한 땅콩스넥 브랜드 플랜터스도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해당 광고 캠페인이 브랜드 캐릭터 Mr. Peanut의 ‘희생’과 ‘장례식’을 소재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캠페인의 사전 붐업 일정이 코비의 죽음과 겹치게 되자 플랜터스는 온라인 프로램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WSJ 관련보도). 하지만 이미 준비한 수퍼볼 광고를 철회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죽음’을 가볍게 다루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코비의 죽음 때문에 현대자동차에서도 수퍼볼 TV광고의 일부분을 수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플랜터스의 경우에도 재촬영에 따른 비용이 크거나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전격적인 결정을 통해 팬들의 마음을 보듬는 편이 길게 보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헬기추락 사망사고 처럼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여러 조직들의 커뮤니케이션 활동 (PR)을 이끌어 내는 방식을 살펴 봤습니다. 하나의 큰 사건(event)은 사회적인 차원의 대화를 이끌어 내며, 이러한 경우 많은 조직에서는 그 대화가 자신들의 미션, 조직활동, 이해관계자들과 관련이 있는지 검토를 통해 그 대화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참여할 것인지 의사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만일 하나의 ‘기회’로 본다면 자신의 조직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은 없더라도 조직의 선의, 아량, 또는 재치를 보여주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직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로 본다면 분석과 모니터링을 통해 조직의 입장표명 및 관련 조치를 취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조직들은 상시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사회적인 대화의 흐름을 좇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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