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심판을 둘러 싼 정치적 혼란기에도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사고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의 권한대행 체제 속에서도 사회 곳곳의 재난 대응 시스템이 큰 차질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일반 시민들에게 화재나 교통사고 같은 사건사고는 그 규모가 크더라도 일상적인(?) 뉴스일 뿐입니다. 하지만 직간접적 피해자들에게는 발생 원인이나 경위, 책임자 또는 책임주체, 대응방안의 적절성 등에 관한 정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을 경우 이들은 직접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건사고의 책임 주체는 물론 관련된 조직에서는 신속하게 상황을 수습하거나 지원하는 동시에 이해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Public Relations Communication) 활동을 펼쳐야 합니다. 여기서는 사건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효과적인 PR기능과 설명책임(accountability)에 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잇따른 화재사고
최근 신축 공사 마무리 단계에 있던 부산의 한 호텔에서 화재로 인해 6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약 30 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에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 급식실 화재로 자동차 약 10 대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화재가 진압된 후 관련된 조직에서는 각각 피해자들에 대해 위로의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대응방식에는 두 조직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호텔 화재의 피해자 및 가족들은 화재발생 원인이나 사망자 발생 경위에 대해서 호텔 측 대표자로부터 한 어떠한 설명도 직접 듣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반면에 인명피해가 없었던 고등학교 화재와 관련해서는 시 교육청의 발표 이후로 별다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화재의 규모나 피해상황이 크게 다르지만 두 사고의 수습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방식에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 온 것은 책임 주체의 적절한 초기 대응 및 설명책임(accountability)의 이행 여부에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책임 주체의 상황 통제
부산 반얀트리 호텔 화재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호텔 이름에 표기된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반얀트리일까요? 하지만 반얀트리 측에서는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뜻을 밝히면서도 자신들은 아직 운영권을 인계받지 않은 상태임을 강조했습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해당 호텔은 부산 지역에 기반을 둔 한 기업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컨소시엄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스를 통해 건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호텔의 경우 소유구조도 복잡한데다 소유업체와 운영업체가 다릅니다. 아직 운영권의 양도가 없었다면 결국 이번 화재에 대한 책임은 소유주측에서 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화재 현장 합동감식에는 시행사 삼정건설 외에 소유주 측이 참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향후 수습방안 마련 및 실행에 있어서 소유주측에서 좀더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
책임주체의 대내외적 관계관리
사건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책임 주체인 기업에서는 언론을 통해 회사의 입장을 밝히고 관련 피해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PR활동을 수행해야 합니다. 즉, 대내외적으로 회사 차원의 Public Relations(PR) 기능이 작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적인 PR은 단순히 조직을 대표해서 메시지를 만들고 전달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홍보 담당자들의 판단이나 역량만으로 메시지가 결정되지도 않습니다. 회사를 대표해서 발표하는 메시지는 관련 사안에 대한 회사측의 책임 인정이나 부인, 보상이나 지원 방침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최고경영진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PR은 단순한 메시지 관리 기능이 아니라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관리를 위한 전략적인 경영활동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 및 관계관리를 통한 전략적인 경영활동이란 주어진 상황에 연관된 이해관계자들의 인식과 기대 또는 요구를 파악하고 소통하며 사업을 지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번 화재 사고에서는 호텔을 개발,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 내부 직원(현장 작업인력 포함), 시행사, 시공사, 지자체, 정부, 소방, 경찰, 언론의 인식 및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종합적으로 대응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화재 당시 현장에 작업하고 있었던 40 여개 업체 소속 800 여 명에 대한 사과와 위로, 지속적인 소통활동이 함께 진행되어야겠지요.
입장(Position Statement) 표명
각종 언론매체는 독자, 시청자, 또는 일반 시민의 ‘알 권리’를 대변합니다. 이들의 관심사를 반영해서 취재 활동을 진행하고,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합니다. 따라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상황이 전개되면 해당 조직은 우선 회사의 기본 입장(holding statement)을 발표합니다. 해당 조직에서 발표하는 일련의 입장문들을 바탕으로 언론에서는 조직의 상황 인식, 태도, 행동, 결과에 관해 후속 취재를 이어가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 관해서 여러 주체들이 동시에 경쟁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거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 입니다. 이번 호텔 화재와 관련해서는 책임주체와 관련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현장관리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시공사와 시행사조차 화재 발생 후 나흘이 되도록 사과문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소방당국의 브리핑에 이어 반얀트리 측에서 ‘아직 운영권 인계 전’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해명 책임 (Accountability)
특정한 상황에 대해서 책임(responsibility)이 있는 조직은 상황의 복구 및 정상화 외에도 이른바 해명 책임(Acccountability)도 함께 지게 됩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설명, 회사의 입장 및 대응 계획, 결과에 대한 전망 등을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것입니다. 이는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각 조직에게 주어진 소통의 책임인 동시에 이를 통해 조직의 대응 역량이 외부에 드러나게 됩니다. 따라서, 이번 화재사고의 책임 주체가 언제 어떤 입장을 빍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대응 계획을 세우고, 피해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통해 회사의 역량 및 대응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물론 기업의 규모가 크고 평판에 민감할수록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화재사고 ‘진화’활동 및 사후 대응
호텔 화재 직후 책임주체가 신속하게 가려지지 않은 것과 달리 학교 화재에서는 시 교육청이신속하게 입장을 밝히고 대응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먼저 화재와 관련된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뜻을 밝히고, 안전 진단을 통한 복구 계획 수립, 복구비 및 급식 운영비 지원 방침 등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관내 학교 시설물에 대한 점검 계획도 포함되었습니다. 학교 화재의 경우 급식실의 불이 ‘물리적으로 진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화재와 관련해 제기될 수 있는 각종 우려사항과 문제 제기의 가능성도 함께 처리된 것입니다.
반면에 호텔 화재의 불은 꺼졌지만, 아직 논란의 ‘불씨’는 피어 오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호텔 화재의 책임주체가 곧 가려진다고 해도 복잡한 출자구조 때문에 향후 시설 복구, 재발 방지 조치 및 적절한 피해보상까지 신속하게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논란의 불씨가 시공사, 시행사, 사업주(소유주), 운영사를 넘어서 인허가권을 지닌, 지자체 등 어디까지 번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책임을 지고 상황을 수습해야 할 사업주인 부동산 컨소시엄측은 신속하게 내부의 논의를 거쳐 사태 수습의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책임 주체로 나선 뒤 해당 기업이 만일 언론 문의에 대해 제 때에 적절하게 답변 하지 않는다면 집중 취재가 이어지게 되고, 마침내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됨에 따라 조직의 전반적인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답변 시 조직의 인식 수준, 사안을 바라보는 태도 및 대응방향, 실질적인 대응 조치 등에 대해서 언론의 취재 및 시민들의 관심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해당 사고와 관련해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경우에도 기업의 사회적 위치나 평판, 최고 경영자의 의지에 따라 선제적으로 복구 및 지원활동에 나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나 지자체의 경우 우선적으로 복구활동과 피해자 지원활동을 진행하고 사후에 관련 업체에 대해서 구상권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PR
사건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조직 내부에 아무리 유능한 PR부서가 있더라도 사건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효과적인 Public Relations 활동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이해를 구하고 이들의 협력을 이끌어 냄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복구 및 회복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호텔화재의 경우 물리적으로 불은 꺼졌지만 아직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습니다. 이번 호텔 화재처럼 사업장 소유주와 운영 주체가 다르거나 소유구조가 복잡한 경우에는 사건사고의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해 수년 간의 법정 다툼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당연히 관련 피해자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지원과 신속한 소통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해관계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언론사, 시민단체들의 도움을 구해서 관련 업체들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실질적인 소유관계에 따른 법적 책임자가 나타나기 전에 호텔 이름을 빌려주고 운영을 맡게 된 외국계 호텔 측에서 더 이상 평판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부산 시에서도 먼저 복구 및 피해자 지원을 하고 나중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이름값과 이해관계자들의 기대까지 고려한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기업 내에 전략적인 PR부서가 존재한다면,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 관점 또는 평판 관리 관점에서 고위 경영진의 올바른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책임을 회피하려다가 사업권 자체를 잃거나 모기업 등이 소비자 불매운동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부에서 타당한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결국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지지를 얻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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