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넷플릭스 코리아가 공개한 의학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국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해 방영 예정이었던 tvN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 번외편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이 전공의 파업 여파로 취소된 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방영된 의학 드라마였습니다. 의료현장이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임에도 국내에서 좋은 반응이 있었던 것은 다소 의외입니다. 아마 원작 웹소설의 작가가 밝힌 것처럼 ‘비현실적인 의사가 절실하게 필요한’ 역설적인 상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병원 내 외톨이였던 중증외상팀이 중증외상센터로 거듭나기까지 핵심적이었던 ‘여론전’은 사실 드라마에서는 자세히 다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옥의 티’ 찾기처럼 PR전문가의 도움 없이 중증외상팀 혼자서 능숙하게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다루는 장면들을 꼼꼼히 톺아 본다면 현대 PR(Public Relations)의 특성과 조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수익성과는 무관할 수 있는 중증외상팀이 PR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정당화하고 방어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메디컬 히어로 스토리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에 등장하는 ‘한국대학병원 중증외상팀’은 사명감과 희생정신이 남다른 의료진들이 밤낮없이 자리를 지켜가며 위중한 환자들을 살려내는 의료현장이 아닙니다. 전임자는 과로로 쓰러져서 떠났고, 빈 자리를 채울 전공의 지원자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외과 전공의들이 돌아가며 대체 당직을 설 수 밖에 없는 비인기 진료과일 뿐입니다. 더욱이 병원 경영진에게 중증외상팀은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주의 부서입니다. 결국 생명이 위급한 중환자들에게는 초인적인 ‘영웅들(heroes)’이 필요한 상황인 것입니다.
한편, 경영실적을 관리해야 하는 병원장과 기획조정실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추천으로 선발한 백교수를 자연스럽게 쫓아내기 위해서 ‘의료사고’ 프레임을 씌웁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낙하산 인사’와 ‘외압설’을 흘리며 부정적인 여론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이에 백 교수와 중증외상팀은 때로는 뛰어난 의술과 팀워크로, 때로는 언론 인터뷰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한마디로 천재적인 의술과 함께 병원 안팍에서 여론전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PR 톺아보기] 중증외상팀의 비공식, 개인/팀차원 언론홍보 활동
병원장이나 기획조정실장에 맞서야 하는 중증외상팀은 당연히 공식 홍보채널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기자들을 섭외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이나 중증외상팀의 존재가치에 대해서 알려나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아래에서는 조직 내 홍보부서의 도움은 커녕, 이들과 맞서야 하는 개별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PR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비영리 조직 내의 수익성 압박 (ROI)
국내 법에 따르면 대형병원도 비영리 법인이므로 영리성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병원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최신 의료장비나 우수한 의료진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병원 경영진은 의료진에게도 상시적으로 예산관리의 필요성을 주문하게 됩니다. 극 중에서 병원 내부 부문 중 가장 뛰어난 곳은 ‘장례식장’입니다. 반면에 중증외상팀은 단지 ‘고비용’ 부서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조직 내부에서 매출 창출에 기여하는 마케팅 관련 부서를 높게 평가하는 반면에 주로 비용만 발생시키는 것으로 인식되는 PR의 위상이 낮은 것과 비슷합니다. 어느 조직에서든 매출 기여도가 높은 부서는 내부에서 발언권이나 힘(power)이 세지만 그렇지 못한 부서는 상대적으로 위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등장인물 (characters): 주인공
극 중에서 주인공 백강혁 교수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결국 사망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의 ‘눈 앞에 놓인 환자는 반드시 살린다’는 신념에 따라 근무합니다. 그는 해외의료 봉사와 민간군사기업 소속 의료진 활동을 통해 뛰어난 의술을 익힌 것으로 설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허점투성이입니다.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진들에게 막말과 거친 행동을 일삼습니다. 직선적인 성격에 권위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오늘날 요구되는 새로운 리더십이나 MZ세대와의 소통에 적합한 대인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크게 부족한 편입니다.
반면에 그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뛰어난 편입니다. 그의 연구실에는 상장이나 표창장 대신 환자들과 찍은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환자들을 진료하며 자연스럽게 남겨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스토리’를 쌓아가기 위한 방편입니다. (예를 들어 현지인 환자들과의 소통 오류 에피소드는 재미 요소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언급된 기사와 댓글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직접 댓글을 달기도 합니다. 이처럼 백강혁 교수가 PR팀의 지원없이 개인적으로 언론 인터뷰를 기획하고 SNS를 다루는 모습은 의술 못지않게 뛰어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보이지 않는 홍보(Public Relations) 라인
한편 이 드라마에서 홍보(Public Relations) 부서의 움직임이나 존재감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드라마 컨셉에 따라 메디컬 히어로, 즉 천재의사가 병원 경영진과의 갈등을 통쾌하게 해결하는 이야기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병원 측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의식해서 일단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초기 갈등은 내부 커뮤니케이션 상의 문제로 비춰집니다. 하지만 중증외상팀이 경영진의 경비 절감 지침을 따르지 않자 경영진 측에서는 여론을 움직이려고 합니다. 부정적인 여론 조성을 위해 언론을 활용하는 과정에 병원 홍보부서가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직의 홍보부서는 조직 전체를 대표해서 소통하게 되므로 개별 부서들과는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극 중에서 병원 홍보부서는 병원장이나 기획조정실장의 지시에 따라 백 교수 채용과정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는 정보를 흘리거나 중증외상팀 진료 과정의 ‘실수’를 시인하는 기자회견을 맡아서 실행했을 것입니다.
4. 조직에 맞선 개별 구성원 또는 팀 단위 PR 소통활동
반면에 조직의 구성원들이 외부의 PR전문가나 실무자를 통하지 않고 병원측의 공식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극에서는 의료사고 의혹과 관련해 병원측에서 준비한 기자회견장에서 중증외상팀이 반박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별도의 소통채널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병원측이 마련한 기자회견장을 찾아가서 직접 해명합니다. 물론 개인과 조직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간의 다툼이었다면 이러한 방식의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백강혁 교수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언론 취재를 섭외한 장면도 몇 차례 나옵니다. 스토리 전개 상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많은 기자들이 언론홍보팀을 거치지 않고 개인의 요청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대형 사건사고가 아니라면 대부분 언론홍보팀을 거쳐서 매체 초청, 안내 및 지원이 이루어집니다. 개인이 다수의 언론사를 활용해 단기간에 조직에 맞서는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들이 갖지 못한 PR전문성의 한계도 극 중에서 드러납니다. 백교수는 언론 인터뷰 진행 중에 기자들을 자극하는 행동을 연발합니다. (물론 기자들에게 소리지르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설정이지만 언론대응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것으로 봐야겠습니다.) 사실 언론 입장에서는 백교수처럼 의술이 뛰어나지만 튀는 행보를 하는 사람이 기사화하기 좋은 대상이지요.
5. 중증외상센터 설립 후 공식 소통
극의 끝 부분에서는 닥터헬기 도입과 함께 <중증외상센터>가 출범하게 됩니다. 따라서 센터 출범 이후에는 대학병원 홍보부서를 통해 병원의 공식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증외상센터의 대내외 소통활동은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요?
극 중에서 병원장은 닥터헬기가 뜰 때마다 적자 걱정을 합니다. 닥터헬기 관련비용뿐만 아니라 중증환자 진료비 수가가 정부(건강보험 심사평가원)로부터 충분하게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장은 경비절감과 함께 수익성 증대를 위한 마케팅을 강조했을 것입니다. 즉, 다방면으로 수익성을 높이도록 모든 진료과에 요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병원장은 전략적인 PR활동을 추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즉, 병원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 중증환자 진료수가 현실화 및 정부의 예산지원을 촉구하고,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전략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또한 병원의 전반적인 평판 개선에 대한 중증외상센터의 기여도를 분석해서 대내외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매출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마케팅부서와 달리 홍보부서의 효과는 잘 드러나지 않거나 장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홍보팀은 부정적인 이슈나 위기 사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사태가 확대되거나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를 방지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나타나지 않은 부정적 사건사고의 예방효과를 측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효과적인 PR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부정적인 상황을 예방하거나 효과적으로 초기 대응하고,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를 관리함으로써 조직의 평판을 개선하는데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병원 홍보부서가 전략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경영성과를 강조하는 병원장의 방침에 따라 단순히 많이 알리거나 이미지 개선활동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예산지원과 재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내부적으로 제안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즌 2를 기다리며

넷플릭스 코리아의 의학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중증외상센터 특유의 긴박한 의료현장은 물론 병원 내부의 경영성과에 대한 압박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단순히 의료진의 휴머니즘이나 희생정신에만 기댈 수도, 영리성 관점에서만 중증외상센터를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사실 비용대비 효과성(ROI) 개선은 오늘날 모든 조직에서 안게 되는 과제입니다. 이상에만 치우친다면 비영리조직은 방만하게 운영되거나 재원 부족으로 인해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전략적인 PR부서가 내부에 존재한다면 이해관계자 관점과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병원 경영이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조직이나 사회가 ‘본질’을 잊어버리고 영리성과 효율성만을 추구한다면 개인이나 단위부서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조직의 공식 소통채널을 활용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이나 단위 부서는 개인적 또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문제제기를 하거나 반론을 펼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극 중 주인공과 중증외상팀은 언론홍보와 소셜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이나 소수가 조직 구조와 맞서기 위해서는 여론의 지지를 얻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시즌 2가 만들어진다면 내부 ‘악당’이 사라진 중증외상센터는 PR부서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이 그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메디컬 히어로 이야기가 또다시 펼쳐지려면 또 어떤 ‘강적들’이 나타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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